“친환경 포장 뒤의 진실: 그린워싱에 대한 글로벌 규제 강화”
“지속가능성의 이름으로 포장된 거짓말, 이제 법적 책임이 따른다”
추석 연휴를 앞둔 2024년 9월 13일 금요일, 즐거운 마음으로 필자가 근무하는 로펌이 위치한 코엑스 인근을 거닐던 중 “FREITAG” 상표가 붙은 가방을 자주 보게 되었다. 금요일이니까 “FREITAG”(독일어로 금요일)이 자주 눈에 띄는구나 했는데, 알록달록한 색상과 범상치 않은 재질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다음 날 나들이 준비를 하다가 옷장에서 2022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컨테이너 형태로 조성된 프라이탁 플래그십 매장을 방문해서 구매한 “FREITAG” 가방을 발견했다.
프라이탁은 취리히 출신 디자이너 프라이탁 형제가 고속도로를 오가는 트럭의 덮개 방수천을 재활용해 만든 가방 회사다. 신제품이라고 해도 가방에는 트럭 방수천의 속성상 흠집이 가득한데 소비자에게 이것이 훈장이나 스토리가 된다. 원단 오염이 적은 가방일수록 친환경제품으로 인식되어 매진이 빠르다. 무심하게 어깨에 두른 프라이탁 가방은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훌륭한 미닝아웃(Meaning-Out) 아이콘이다.
프라이탁과 같은 ‘친환경’ 트렌드를 읽은 기업들은 너도나도 친환경을 표방하기 시작했다. 커피전문점은 종이 빨대를, 항공사는 탄소배출량이 적은 항공상품을, 자산운용사들은 ESG 펀드를 도입하고 광고했다. 하지만 ‘친환경’을 내건 기업의 광고나 활동이 모두 환경친화적인 것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환경보호 효과가 미미하거나 오히려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처럼 기업이 실질과 달리 친환경적인 활동을 홍보하는 행위를 그린워싱(Green Washing)이라 부르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규제의 폭과 깊이를 날로 더하고 있다.
이탈리아 섬유기업 M사가 “지속가능성을 갖춘 최초의 재활용 가능한 극세사, 100% 재활용 가능, 에너지 소비와 이산화탄소 방출량 80% 감소” 등의 표현을 사용한 광고를 한 것에 대해서 이탈리아 법원은 유럽 최초로 그린워싱 광고로 판단하였다.
세계 최대 육류 가공업체인 J사는 “육류 식품을 소비하고도 넷제로를 달성하는 기후솔루션이 가능하다, 2040년까지 모든 직간접배출을 없애겠다” 등의 선언을 하였으나,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아 미국 뉴욕주로부터 허위 지속가능성 광고를 이유로 제소를 당했다.
글로벌 자동차회사 B사의 전기차에 대한 ‘무배출(zero emissions)’ 광고에 대하여 영국 광고규제당국은 “’무배출’이라는 용어는 소비자들에게 전기차를 충전하는 전기가 무탄소이거나 차량과 부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도 무배출이라고 오인될 소지가 있으므로 ‘배기가스 무배출’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권고를 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환경부가 2022년말 정유/철강업체들을 대상으로 그린워싱 조사를 한 후 ‘탄소중립 윤활유’에 대해 시정권고나 행정지도를 하였는데, 네덜란드 규제당국의 글로벌 정유업체 S사에 대한 광고중단명령 케이스를 참조한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환경부는 2023년 10월 31일 친환경 경영활동 표시‧광고에 대한 기업의 준수사항을 담은 「친환경 경영 활동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을 발간하였는데, 이 가이드라인은 기업에서 많이 행해지는 8가지 친환경 경영활동의 각 유형에 대한 표시‧광고 원칙 및 방법, 실증 세부 사항 등 표시‧광고 시 지켜야 할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린워싱에 대한 규제가 하나씩 현실화되고 있지만, 규제에 직면한 기업 입장에서는 사례가 축적되지 않은 사항에 정확하게 대응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녹색프리미엄”이라는 기재를 한 경우가 그린워싱 규제 대상인가? “CO2 Free”라는 표현은 해당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 전체에서 일어나는 경우에만 쓸 수 있는가, 제조나 운송 일부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사용할 수 있는가? “Zero”는 완전히 없음을 입증할 수 있어야만 사용 가능한가?
또한, 그린워싱을 강조할 때 “새빨간 거짓말보다 나쁜 녹색 거짓말”이라는 말이 흔히 쓰이나, ‘녹색 거짓말’은 의도하지 않게 만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것이 에코백과 텀블러다. 텀블러는 유리 재질이 15회, 플라스틱 재질이 17회, 세라믹 재질이 39회 이상 사용되어야 일회용 종이컵보다 환경적인 이점이 있다. 에코백은 비닐봉지보다 131회 이상 사용되어야 친환경적이 된다. 에코백과 텀블러가 과잉 생산되고 제대로 사용되지 않는 이상, 에코백과 텀블러 사용 독려는 ‘녹색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자주 하면 코가 길어지는 부작용이 나듯, 기업이 ‘녹색 거짓말’을 수시로 하면 규제 위험에 노출되어 경쟁력을 갉아먹게 된다. ESG 대응을 해야 한다는 당위에만 매몰되어 녹색 거짓말을 외치면 피노키오 ESG 기업이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전문가와 함께 기업의 메시지를 준비하고 위험요소를 미리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응 논리나 입증 논리를 미리 고민하고, 부족하지만 국내외 케이스를 적절히 참고하는 것이 피노키오 ESG를 막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광욱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화우 신사업그룹장
2007 University of Pennsylvania Law School LLM
2007-2008 Steptoe & Johnson New York Office
2017-현재 한국환경공단 외부심의위원
2019-현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