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급망 인권∙환경 실사: 선택이 아닌 법적 의무
글로벌 기업들이 최근 가장 관심을 쏟는 이슈 중 하나는 올해 7월 발효된 공급망 실사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CSDDD)이다. 공급망 실사법이라고도 불리는 본 지침은 기업들에게 「인권∙환경에 대한 실사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CSDDD에 따르면 기업이 실사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제재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기업의 실사 의무 위반으로 제3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기업은 제3자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CSDDD 에 따라 유럽 회원국들은 2년 내에 법제화를 완료해야 하며, 독일, 프랑스 등 일부 주요국에서는 이미 유사한 내용의 법제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기존 법제화에 대한 개정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CSDDD는 EU의 규제이므로 그에 따른 영향은 유럽에 국한된 것이고 우리나라에는 아직 먼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국에 본사를 두고 있더라도 연결 매출액 기준으로 EU 향 수출액이 4.5억 유로를 초과할 경우 CSDDD의 직접적인 적용 대상이 되며, CSDDD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 중견∙중소기업 역시 글로벌 기업의 공급망에 포함되어 있다면 간접적으로 CSDDD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공급망 규제 강화 움직임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캘리포니아주는 공급망 투명성 법률을 시행 중이고, 특히 2022년 6월부터는 미 전역에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Uyghur Forced Labor Prevention Act, UFLPA)이 발효되었다.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으로 수출한 기업이 자신의 공급망 내에서 강제노동 등 인권 침해가 없었음을 확인하기 위해 실사하고, 실사 결과에 대한 증빙자료를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EU의 CSDDD와 궤를 같이 한다. 미국의 복안이 對中 경제 압박에 있다는 평가와 별개로, 실제로 이 법이 시행된 이후 많은 기업들이 미국 정부로부터 자료제출 요구를 받고 있고 제재 사례까지도 나오고 있다. 중국산 재료∙부품을 활용하는 국내의 기업들 또한 이 법에서 자유롭지 않다.
ESG는 그동안 의무보다는 선택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 ESG는 특정 소비층에 대한 마케팅 포인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적 규제가 수반되는 의무가 되어 가고 있다. 유럽∙미국에서 직접 활동하는 대기업뿐 아니라, 대기업의 공급망에 속해 있는 수많은 중견∙중소기업들 또한 이 같은 법 규정들의 영향 범위에 있다. 본 섹션에서는 EU의 공급망 실사 지침과 미국 위구르 강제노동 방지법을 중심으로 기업이 준비해야 할 사항을 살펴본다.
2. EU 공급망 실사 지침(CSDDD)과 기업의 의무
공급망 실사법의 적용을 받는 기업은 공급망 전체에 걸쳐 인권∙환경 실사를 수행하고, 실사 결과 발견된 부정적 영향에 대해 기업 스스로 식별∙예방∙완화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이후에는 조치의 효과성에 대해 모니터링하고, 실사 내용을 공개하여야 한다.
CSDDD에서 요구하는 기업의 의무는 ‘기업 내 실사체계 구축 단계’에서 출발한다. 기업의 실사 방식, 절차, 근거, 정책 등 한 마디로 실사를 수행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실사체계를 구축한 다음에는 기업의 공급망 내 협력사를 대상으로 인권과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식별하는 ‘실사 단계’로 나아간다. 인권과 환경에 있어, 기업의 운영∙제품∙서비스가 현재 유발하고 있거나 잠재적으로 유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정적인 영향이 있는지 식별한다. 실사 대상은 매우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다. 「인권」의 경우 단체교섭권, 단결권, 아동노동, 강제노동, 차별, 안전∙보건 등이, 「환경」은 기후변화, 대기∙수질∙토양 오염, 생태계 보호, 천연자원 과소비, 폐기물 관리, 화학물질 생산∙사용 등이 대상이다.
발견된 부정적 영향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구제(개선) 조치 단계’ 또한 기업의 역할이다. 기업의 경영, 생산 프로세스를 수정하거나 투자하는 것은 물론이고 협력사에게도 예방∙시정조치가 이루어지도록 계약 내용에 반영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조치를 취한 이후에는 이행 여부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조치의 적절성과 효과를 계속해서 모니터링해야 한다. ‘모니터링 및 검증’ 단계다. 모니터링 결과에 따라 기존의 실사체계를 업데이트해야 한다.
공급망 실사의 최종 단계는 ‘공시’이다. 기업은 공급망 실사 결과를 공시하여야 한다. 이때 EU의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CSRD)의 적용을 받는 기업은 CSRD에서 정한 바에 따라 공시를 하여야 한다.
CSDDD에 따르면 기업이 실사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전 세계 순 매출액의 5% 이상을 최대한도로 하여 전세계 순매출액에 비례한 제재금이 부과될 수 있다. 이러한 정부 제재와 별개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가능하게 하는 규정도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기업의 실사 의무 위반으로 제3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기업은 제3자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며, 이 때 손해배상 소송의 제기는 손해 당사자뿐 아니라 노조, 환경/인권 단체 등도 가능하다.
3. 미국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UFLPA)과 기업의 대응 방안
UFLPA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채굴, 생산, 제조되었거나 중국의 특정 단체에 의해 생산된 모든 상품, 부품은 강제노동에 의해 생산되었다고 추정하고, 미국 수입을 금지하는 법률이다. 신장 지역에 공장을 두고 있지 않다거나 대상 기업과 직접 거래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법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배터리 원자재, 실리카 기반 제품, 식료품, 면화 등 많은 제품이나 부품, 원재료가 신장 지역이나 위구르족을 고용한 기업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를 부분적으로 활용한 상품도 UFLPA의 제재 대상이 된다.
따라서 기업은 기업이 수입한 중국산 물품에 대하여, 미국 정부가 신장 위구르와의 연관성을 의심하면 기업은 해당 물품이 강제노동에 의하여 생산된 것이 아님을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에 의해 입증하여야 한다. UFLPA가 요구하는 절차 중 하나는 기업실사, 공급망 추적, 공급망 관리 조치를 실시하고 그 정보를 관리하는 것이다. 기업은 강제노동 리스크에 대한 실사를 수행하고, 원자재까지 모두 포괄하는 전체 공급망에 대한 추적과 관리를 실시하여야 한다. 이러한 정보를 제출하지 못할 경우 해당 제품에 대한 수입 배제 및 압류는 물론이고, 기업과 개인에 대한 제재까지도 이루어질 수 있다.
4. 시사점
첫째, 인권∙환경 문제의 해결 주체가 정부에서 기업으로 넘어왔다. 종래에는 인권∙환경과 같은 이슈는 정부 주도로 관리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EU의 CSDDD, 미국 UFLPA 등은 기업에게도 그 부담을 지도록 요구하고 있다. 기업은 수익뿐만 아니라 인권∙환경에 대하여도 관리할 의무가 있고, 이를 게을리 하면 기업에게 제재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공급망 관리를 위한 시스템 구축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앞서 소개한 지침과 법령들은 인권 실사를 일회성으로 수행해서는 만족시킬 수 없다. 오히려 위 규정들이 중점을 두는 것은 기업이 인권과 환경에 대한 책임 있는 의지를 가지고 실사 체계를 구축하는지, 그 체계 하에서 실사를 수행하고 계속 모니터링하는지 여부다. 이러한 시스템 구축은 단기간에 완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법 시행에 대비하여 하나하나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셋째, 법령 시행∙적용 여부를 떠나서라도, 이미 판례를 통해 이사의 책임 범위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위법행위와 관련된 다수의 사건에서, 판례는 지속적으로 이사로 하여금 기업의 위험을 통제하기 위한 내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하도록 요구하여 왔다. 대표이사를 포함한 이사가 기업의 위법행위나 위험 발생을 직접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통제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미국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판례의 경향이 이러하다면, 기업의 공급망 내에서 인권∙환경 침해 이슈가 발생하는 경우 각국의 법령 여하를 떠나 이사에게 법적 책임을 묻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인권∙환경 실사는 대부분의 기업이 경험하지 못한 영역인 만큼, 초기 체계를 구축하고 준비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기업의 발 빠른 대응과 자료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재홍 변호사
김장법률사무소 2014-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