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언어로 작성된 계약서, 해석 차이로 법적 분쟁 빈발”
“계약서 간 우열 규정의 부재, 불필요한 논쟁과 비용 초래”
최근 계약 체결 당사자들의 국적이나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경우, 즉 국제적 요소가 가미된 내용의 계약이 체결되는 경우가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이며 그 작성 방식은 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하여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경우 하나의 통일된 언어로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각 당사자가 선호하는 언어로 수 개의 계약서를 작성 후 이들 사이에서 효력의 우열을 정하는 조항을 포함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 일본 기업 그리고 미국 기업이 당사자가 되어 하나의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전자의 방법에 따라 공용어인 영어로 통일하여 하나의 계약서만 작성할 수도 있고 또는 후자의 방법에 따라 한글, 일어, 영어로 각각 계약서를 작성, 그 중 하나의 계약서에 효력 우위를 부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 언어로 작성된 복수의 계약서가 작성되었음에도 그 중 특정 언어로 작성된 계약서에 효력 우위를 부여하는 조항이 없거나 있어도 해석이 애매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필자가 경험한 사례를 간단히 소개하면, 수년 전 해외에서 설립된 회사가 발행하는 전환사채를 국내 기업이 인수하는 내용의 계약이 체결되었는데 해당 계약은 먼저 영문으로 초안이 작성되었고 그에 대한 번역본으로 국문 계약서가 작성된 경우였다. 영문 계약서에는 명시적으로 국문, 영문으로 작성된 2개의 계약서가 존재하고 그 중 영문 계약서의 효력이 우선한다고 기재되어 있으나 국문 계약서에는 영문 계약서의 존재에 대한 언급이 없이 단지 본 계약은 국문으로 작성된다라는 사실만 기재되어 있었다.
한편 해당 계약은 국내 기업인 사채권자에게 만기 도래에 따른 상환청구권 및 사채발행 후 일정 조건 하에 만기 도래 전이라도 상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면서 별도 특약으로 해외 기업인 발행회사에게는 상환 시 현금이 아닌 주식 등의 현물로 대납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권을 부여하였다. 문제는 발행회사의 선택권 발생 조건에 대해 영문 계약서에는 “상환시”라고 기재, 사채의 만기 또는 만기 전인 경우를 구별하지 않았으나 국문 계약서에는 “만기상환시”의 경우 현물대납의 권리가 인정되는 것으로 기재, 마치 만기 전의 경우에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었다.
결국 해당 계약에서 정한 일정 조건이 충족되어 사채권자는 만기 전에 발행회사를 상대로 상환을 청구하려 하는데 발행회사가 현금이 아닌 현물로 대납할 권리가 있는 지에 대한 해석이 문제가 된 사안이었다. 이는 영문 계약서와 국문 계약서 중 어느 계약서에 효력 우위가 있는 지로 귀결되는 문제였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문 계약서에는 영문 계약서의 존재나 효력 우위에 대하여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양 계약서 해석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양 계약서가 작성된 시간적 순서, 체결 당시 당사자들의 진의, 발행회사의 국적, 효력 우위 규정의 명료성 등 여러 요인을 검토하였을 때 영문 계약서에 효력상 우위를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이와 같이 여러 사정들이 의사표시 해석에 기여하게 되나 계약서에 기재된 문언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불필요한 논쟁을 방지하고 그에 따른 법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작성되는 모든 계약서에 명확하게 계약서 간 우열을 미리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최초 협상 단계에서부터 프런트에 직접 나서는 실무진뿐만 아니라 사내변호사를 포함한 법무 조직이 함께 논의에 참여, 계약서들을 작성 및 검토 할 필요가 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계약 체결이 점점 늘어나는 현황에 비추어 볼 때 사내 법무 조직의 역량은 회사의 이익과 직결되므로 그 업무 범위는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박찬용 변호사
Rockcliffe Law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前 CG인바이츠 법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