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외 법적 동향, 친환경 협력이 경쟁법 위반인가?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새로운 규제 방향 제시”
1. 배경
얼마 전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31년~2049년 사이의 탄소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 환경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네덜란드 법원이 2015년 소위 우르헨다(Urgenda) 판결을 통해 자국 정부가 1990년 대비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5% 감축할 의무를 부과하였다.
전세계가 기후 이변에 노출되며, 지속가능성 내지 녹색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고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 과제는 특정 국가 내지 일부 기업의 영역을 벗어난지 오래이다.
2. 지속가능성과 경쟁
경쟁법도 예외일 수 없다. 공정거래법의 법적 근간이 되는 헌법은 “국가는 (…)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제119조 제2항), 그에 앞서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제35조 제1항). 국가에게 국민의 환경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부여된 것이다. 환경권의 보호대상인 환경에는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인공적 환경과 같은 생활환경도 포함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 입장이다(헌재 2019. 12. 27. 선고 2018마730 결정 등).
경쟁법을 둘러싼 국가 정책도 입안부터 법 집행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환경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친환경 내지 지속가능한 성장에 도움되는 사업자의 행위는 경쟁법을 적용함에 있어 ‘친경쟁적 요소’ 내지 ‘정당한 이유’ 등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말해, 지속가능성은 경쟁법 위반을 판단할 때 어느 정도 고려될 수 있는가?
3. 해외 동향
이에 관해 최근 지속가능성과 경쟁정책의 상호 관계에 대한 많은 고민 끝에 결과물을 내놓고 있는 유럽연합(EU), 영국, 그리고 일본의 움직임은 국내 경쟁정책과 법 집행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동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EU 내에서 본 이슈에 관해 가장 먼저 활발한 논의를 개시한 곳은 네덜란드의 경쟁당국(소비자시장청, ACM)이다. ACM은 2020년 지속가능성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했으며, 총 2차례 초안 공개를 통해 지속가능성에 관한 EU 경쟁정책 논의에 불을 지폈다. 아래에서 소개할 EU의 개정 수평 가이드라인에 지속가능성 챕터가 추가된 데에도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ACM이 목표했던 바는 절충된 수준으로 EU 개정 가이드라인에 반영되었고, ACM도 2023년 10월 유사한 내용으로 정책 규칙(policy rule) ‘ACM’s oversight of sustainability agreements’을 발표하였다.
(1) 유럽연합(EU)
EU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경쟁정책 담당 부위원장 Margrethe Vestager 하에서 작년 6월 개정된 ‘수평 가이드라인(horizontal guidelines)’을 발표하였다. 개정 가이드라인에는 지속가능성(경제, 환경,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의미)에 관한 경쟁업체들 간 합의를 다루는 챕터(제9장)가 추가되었다. 동 챕터는 경쟁제한적 합의를 금지하는 EU 차원의 경쟁법, 유럽기능조약(TFEU) 제101조 제1항의 적용 범위에서 제외되는 지속가능성 합의를 상세히 설명한다.
예컨대 지속가능성 표준화 협정(sustainability standardisation agreements)은 친경쟁적 요소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으로,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한 정보를 표준 라벨화하여 제품에 부착함으로써 소비자에게 알리고, 소비자가 해당 정보에 입각해 구매의사결정을 하도록 도움으로써 지속가능한 제품 개발 및 판매를 촉진할 수 있다. 서로 다른 규제가 적용되는 환경에 노출된 여러 사업자에게 평준화된 경쟁환경을 제공해 제품 개발을 촉진할 수도 있다. 반면 지속가능성 표준화는 경쟁제한을 위장하기 위해 남용될 여지도 있으며, 표준채택으로 발생한 비용을 가격 인상을 통해 고객에게 전가하는 합의는 경쟁제한의 우려가 클 것이다.
(2) 영국
Sarah Cardell이 이끄는 영국 경쟁시장청(Competition and Markets Authority)은 광범위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작년 10월 ‘환경의 지속가능성 합의에 대한 경쟁법 챕터 I 금지의 적용에 관한 지침(Guidance on the application of the Chapter I prohibition in the Competition Act 1998 to environmental sustainability agreements)’, 이른바 ‘녹색 합의 지침(Green Agreements Guidance)’을 발표했다. 해당 지침은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기후변화에 공동 대응하려는 경쟁업체 간 합의가 전통 법제 하에서 담합에 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하고자 한다. 영국 경쟁법(the Competition Act 1998)은 Chapter I 규정에서 경쟁제한적 합의를 금지하는데, 동 지침에 의하면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녹색 합의를 전통적인 공동행위 판단 잣대에서 해방시킨다.
해당 요건으로 ① 합의가 생산 또는 유통 개선에 기여하거나 기술적 또는 경제적 진보를 촉진하는 특정 혜택(benefits)을 가져오고, 동시에 객관적ㆍ구체적이며 검증가능할 것, ② 합의 및 그에 따른 경쟁 제한이 위 ① 달성에 필수적일 것, ③ 소비자가 혜택을 공정하게 누릴 것, 마지막으로 ④ 합의가 관련 제품의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거하지 않을 것을 제시한다.
(3) 일본
공정취인위원회(公正取引委員会)는 2023년 3월 ‘녹색사회 실현을 위한 기업 등의 활동에 관한 독점금지법 관련 가이드라인(グリーン社会の実現に向けた事業者等の活動に関する独占禁止法上の考え方)’을 마련하였다. 동 가이드라인은 특히 담합에 관해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다. 경성담합(hardcore cartel)이 아닌 경우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사업협력이 독점금지법에 위반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관해 설명과 사례를 함께 제시한다. 지난 2024년 4월에는 일부 이슈를 보다 명확히 하는 가이드라인 개정이 이루어졌으며, 친환경 정책을 둘러싼 우월적지위 남용에 관한 내용, 친환경 제품의 시장획정에 관한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올해 초 녹색 가이드라인에 따른 최초 사례가 나온 것이다. 이데미츠 코산 등 일본 석유화학 5개사는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화석연료를 암모니아로 전환하는 등 공동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 과정에서 정보 교환 및 설비 통폐합에 관한 공동검토 등이 가능한지 위원회에 상담을 신청하였다. 이에 위원회는 독점금지법상 문제 없다고 회신하였다.
4. 국내 현황 및 과제
현재까지 국내에서 녹색 경쟁법 내지 지속가능 경쟁법에 관한 논의는 초기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정거래위원회는 기후테크 기업의 투자활동을 저해하는 규제 개선을 금년도 업무계획으로 확정하였고, 그 일환으로 위 규제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하였다. 관련 기업들과 기후테크 산업 규제개선을 위한 벤처ㆍ스타트업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지속가능성 이슈를 다각도로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움직임은 국내에서도 녹색 경쟁법 마련으로 이어질 동력이 될 수 있다.
우선은 제도 개선을 위해 국내 기업, 학계 기타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수렴하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산관학의 구체적 논의 내용을 토대로, 법령과 같은 경성규범(hard law)에 앞서, 심사지침 내지 가이드라인 등 연성규범(soft law)부터라도 친환경 내지 지속가능성 논의가 단계적으로 반영되길 기대한다. 최근 공정위는 기업결합에서 사전협의 제도를 도입하였는데, 해외 경쟁당국의 예처럼 녹색 경쟁이슈에 관해서도 이 같은 사전협의 제도를 적극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겠다.
김동아 변호사
법무법인(유) 지평
前판사, 前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이종헌 변호사
법무법인(유) 지평